사진/경북

안동 하회마을

도화골 2017. 11. 6. 14:08

안동하회마을 (安東河回마을)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1176-1


내용

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 조선 전기 이후의 전통적 가옥군의 존재와 영남의 명기(名基)라는 풍수적 경관과 아울러 역사적 배경, 별신굿과 같은 고려시대의 맥을 이은 민간전승 등이 현대 공업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전통적 경관과 함께 정신문화의 보존·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豐山柳氏) 동족마을이다. 그 터전은 낙동강의 넓은 강류가 마을 전체를 동·남·서 방향으로 감싸 도는 명기이다.

그 지형은 태극형 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 연꽃이 물에 떠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유씨가 집단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許氏)·안씨(安氏) 등이 유력한 씨족으로 살아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1635년(인조 13)의 《동원록 洞員錄》에도 삼성(三姓)이 들어 있기는 하나 이미 유씨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그 이전에 유씨들의 기반이 성립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유씨의 입향조(入鄕祖)는 8세 종혜(從惠)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과 같은 유씨의 동족기반은 중흥조 유운룡(柳雲龍)·유성룡(柳成龍) 형제시대에 이룩된 것이다. 유운룡은 시조에서 14대의 종손이며, 유성룡은 동생인데 모두 문중의 거봉이어서 이 두 계손들을 겸암파·서애파로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 유서 깊고 규모가 갖추어진 가옥으로서 보물 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들은 모두 풍산 유씨의 소유인데, 특히 그 중에서도 유운룡과 유성룡의 유적이 중추를 이루고 있어 유씨 동족마을의 형성시기와 역사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마을을 감싸 도는 화천(花川)은 낙동강 상류이며 그 둘레에는 퇴적된 넓은 모래밭이 펼쳐지고, 그 서북쪽에는 울창한 노송림이 들어서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강류의 마을 쪽이 백사장인 데 반하여 건너편은 급준한 층암절벽의 연속이어서 여러 정대(亭臺)가 자리잡고 있어 승경(勝景)으로서의 면모도 잘 갖추고 있다.

강류의 북쪽 대안에는 이곳 자연의 으뜸인 부용대(芙蓉臺)의 절벽과 옥연정(玉淵亭)·화천서당이 있다. 서북쪽에서 강물이 돌아나가는 즈음에는 겸암정(謙菴亭)과 상봉정(翔鳳亭)이 자리잡고 있어 일련의 하회명구를 이루고 있다.

이곳 강의 최대 폭은 대략 300m이며 최대수심은 5m에 이른다. 강 건너 인근과의 교통수단은 나룻배이었다. 과거에는 음력 7월 보름에 부용대 밑에서 시회가 열렸으며 시회와 아울러 유명한 줄불놀이가 벌어졌었다.

이 강상유화(江上流花)의 놀이는 하회별신굿과 함께 이 고장의 오랜 민간전승놀이이다. 별신굿에 쓰이던 가면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제작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되어 하회마을의 역사적 배경이 뿌리깊음을 말해주고 있다.

풍산으로부터의 진입도로와 연결된 큰길이 이 마을의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한다. 이 마을길의 북쪽을 북촌이라 부르고 그 남쪽을 남촌이라 부른다. 이들 가옥 중 보물로 지정된 가옥은 보물 제306호인 양진당과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이 있다.

또한 중요민속문화재로는 하회북촌댁(제84호)·하회원지정사(제85호)·하회빈연정사(제86호)·하회풍산류씨작천댁(제87호)·하회옥연정사(제88호)·하회겸암정사(제89호)·하회남촌댁(제90호)·하회주일재(제91호) 등이 지정되어 있다.

이들 지정가옥들은 모두가 유씨 집안의 소유이다. 그 중에서도 규모나 유래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양진당·충효당·북촌댁·남촌댁·옥연정사·겸암정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두 정사를 제외한 가옥들은 모두 ㅁ자형 몸채를 기본으로 하고, 몸채의 한편을 길게 연장하여 사랑채를 삼고 있다. 그러나 북촌댁은 사랑채를 길게 달아내지 않고 ㅁ자형 몸채 안에 그대로 사랑방을 수용하는 한편 옆 마당에 따로 지어진 큰 별당을 두어 사랑방의 공간을 확대, 보완하였다.

양진당은 사랑채를 몸채의 오른편 윗머리에서 달아내어 안채의 대청 끝과는 복도로서 연결하였으므로 안채보다 오히려 뒤편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안대문채와 一자로 뻗은 사랑 행랑채를 들어서면 매우 넓은 사랑마당을 건너 사랑대청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연결을 완충공간으로서의 토방이나 중문을 두지 않고 직결시킨 형식은 매우 특이하다.

양진당의 안방은 칸반통으로 3칸을 잡았으며 전후에 툇마루를 두어 두텁고 여유 있는 공간을 설정하였다. 양진당이 남향집인데 반하여 충효당은 서향집이다.

양진당과는 다르게 사랑채가 안대문채와 一자로 길게 돌출되어 있으며, 솟을대문은 바로 사랑대청 전면에 세워져 있다. 사랑채에서 안채 출입을 할 때에도 양진당과는 달리 대청 뒤 토방에 내려서서 안사랑 부엌으로 통하는 중문을 지나게 되어 있다. 충효당에는 12칸의 긴 줄행랑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유일한 예이거니와 이처럼 칸수가 많은 행랑은 영남 전역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다.

후원에 부설된 영모각(永慕閣)은 소규모의 박물관으로 중흥조이자 임진왜란 때의 공신인 유성룡의 교지·문서 등의 유품과 그에 관계되는 명나라 장수들의 서화 등 여러 문서와 서적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북촌댁의 대문채와 담장은 매우 높아서 위압감을 준다. 그 사랑방과 사랑대청은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이를 보완하는 큰 규모의 별당이 사랑채 옆에 세워져 있다.

한편 남촌댁의 별당은 규모는 작으나 가옥 전체의 맨 안쪽에 위치한 사당채의 동편 후원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별도의 담장을 둘러서 외부와의 공간을 차단하고 있어 별당채로서는 이상적인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작은 연못을 두고 대와 매화를 비롯한 여러 초목을 가꾸어 후원 별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1953년 모두 소실되었으며, 사랑채 터 앞에 옛 정자 한 채만 복원되어 있을 뿐이다.

위 네 가옥은 이 마을의 모든 가옥을 대표할 만한 역사적 유래나 문화적 생활공간을 여유 있게 갖춘 점에서 중요한 비중을 지닌다. 이밖에 여러 대소 가옥 중에는 주거사적인 가치를 지닌 예가 많다.

소규모의 순전한 토담집과 봉담집은 기본적 건축재료인 진흙만으로 벽체를 쌓아올리는 원초적 민가축조기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위 네 가옥의 목조구조와는 상당한 거리를 가지면서도 건축문화의 다양한 일면을 설명해주고 있다.

평면구조도 一자집, ㅁ자집, 튼ㅁ자집 등 다양한 민가형식을 보이고 있다. 이것들은 과거 신분제사회에 있어서 반상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풍부한 자료들인 것이다. 이 마을이 당면한 문제는 산업화에 따른 이농과 인구의 감소 및 노령화, 빈집의 증가와 가옥의 유지·관리의 곤란함, 가옥의 퇴락·소멸 경향 등이다.

2010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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