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말여초(羅末麗初) 울산 호족 박윤웅과 성황당
소재지 : 울산광역시 중구 우정동 27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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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호족 박윤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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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말여초(羅末麗初) 울산 지역의 대표적 호족은 장무공(莊武公) 박윤웅(朴允雄)이며 울산 박씨의 시조이다.
경순왕 4년(930년) 고려 태조에게 귀부(歸附)했고, 태조를 도와 큰 공로를 세웠다. 이때에 태조는 울산 지역을 흥례부(興禮府)로 승격시켰다. 또는 고려를 흥하게 했다고 하여 흥려부(興麗府)라고도 했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그 무렵 계변천신(戒邊天神)이 쌍학(雙鶴)을 타고 계변성(戒邊城) 신두산(神頭山)에 내려와 백성을 편안히 살도록 다스렸다. 계변성은 변방을 경계하는 성이다. 계변성은 천신이 쌍학을 타고 하강한 성이라 하여 신학성(神鶴城)이라고도 부른다. 쌍학을 탄 천신은 새로 흥기한 호족을 의미한다. 이 신학성의 장군이 박윤웅이며 또한 바로 계변천신이다. 마침내 公에 대한 지역민의 존경과 충성은 公을 신격화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이였다. 호족 박윤웅은 달천의 철광과 수공업을 확보함으로써 군사적 기반을 다졌고 울산항의 무역을 장악하면서 경제력을 키웠다. 이 같은 군사, 경제적 배경을 기반으로 公은 고려 태조에 귀부 (1차귀부 태조 13년(930년) 정월에, 2차는 2월에, 3차는 9월에 각각 이루어 졌다) 하여 공신으로 책봉되었고, 농소(農所)의 채지(采地)와 유포(柳浦)의 곽암(藿巖)을 하사받았다. 채지와 곽암은 일종의 녹읍(祿邑)이었다. 公은 울산 지역 최고의 권력자로 부상하면서 公을 중심으로 점차 흥려부는 고려 초기의 주요 지방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울산군에는 다른 군현과 마찬가지로 삼단일묘(三壇一廟)라 하여 고을 북쪽에 여단(厲壇), 동쪽에 성황사(城隍祠), 서쪽에 사직단(社稷壇) 그리고 향교에 문묘(文廟)가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울산 성화사는 고읍(古邑) 성안에 있는데 계변신을 모신다고 되어 있다. 계변신은 나말여초 호족 박윤웅 이다. 성황신이란 각 군현을 수호하는 지역신을 말한다. 곧 울산군의 수호신은 박윤웅 이다. 그리하여 울산 지역에서 병란 등의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에 지방관이 계변천신에게 제문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고려 중기의 학자이며 <동국이상국집>의 주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경주 일대에서의 전쟁 중 33회나 승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이 중 2회는 ‘울주계변성천신(蔚州戒邊城天神)’에게, 1회는 ‘계변천신(戒邊天神)’에게 올리는 제사였다. 제사를 올린 시기는 1203년(고려 신종 6)이었다. 울주 계변성천신 또는 계변천신은 신라 말 계변성에 웅거하면서 울산을 다스렸다는 신학성장군 박윤웅을 말한다. 그는 울산의 수호신이 되어 성황사(城隍祠)에 주신(主神)으로 봉향되었다. 이규보는 두 번째 제사의 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저희들이 거병한 날부터 우리 [계변]천신(天神)께서 이 땅을 진압(鎭壓)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천리를 멀다 않고 몸소 사당을 찾아 한 번 작은 정성을 펴고 은혜 입기를 바랐더니, 과연 신령(神靈)의 응보가 나타나시어 적괴의 머리를 베게 하셨습니다. 지금 중추(中秋)를 맞이하여 제물을 차리고 음악을 올리오니 부디 흠향하소서." 이규보는 경주 농민들이 고려를 부정하고 신라를 부흥하려는 반역을 도모했으므로 반드시 토벌해야 한다 하고, 울산의 수호신 계변천신에게 제사함으로써 반란군을 진압했다고 믿었다. 그가 울산에서 3회나 승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는 사실 역시 울산 농민 일부가 경주 농민항쟁에 참여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시대 성황당 제사의 전통은 현재 울산광역시 중구 우정동 강정 토박이회가 주관하는 성황제로 이어져 오고 있다. 매년 정월 열나흘 자정에 우정동을 비롯한 울산광역시의 안과 태평을 위하여 성황제를 모신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치러진다. 성황제는 현재 1981년에 건립된 성황당에서 지내고 있다.
성황당 우측에는 약 700년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는 12m, 나무둘레 4.7m 이며
2009. 12. 07.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울산광역시 중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