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울산박씨대종회

울산호족 박윤웅

도화골 2019. 12. 31. 19:15

아래의 글 내용은 유튜브(YouTube), 다음(Daum)  또는 울산광역시 홈페이지 동영상에 나오는 내용을 녹취한 것입니다.

동영상을 검색하여 청취하시기 바랍니다.


울산호족 박윤웅


                                                   

https://youtu.be/tH6JsKPYA2c    여기에 클릭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신라말기에 접어들면서 중앙정부의 집권력이 약해저 점차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졌습니다.

이 때 각 지방의 토착세력은 그 세력을 확대하여 장군,성주등으로 불리면서 정치 군사적 실력자로 성장하여 경제적 지배력을 행사하며 지방사회를 장악 했습니다.

이들을 호족이라고 합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이들 호족세력과 연합함으로서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으며, 정권을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왕건의 고려건국에 큰 힘이 된 사람이 바로 울산의 호족 박윤웅입니다.

박윤웅은 혼란의 시기에 주변호족 세력들을 흡수하여 대호족의 반열에 올랐고 신라가 멸망할 무렵 고려에 스스로 항복합니다.

경주 인근에 있던 박윤웅의 항복은 고려의 승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든 것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귀순한 박윤웅의 공적을 기려 삼한공신에 봉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하곡현, 동진현, 우풍현, 동안군, 임관군을 합하여 흥려부라고 하고 그에게 흥려백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이를 다스리게 하였죠.

훗날 울산의 연혁이 이로서 이루어지게 된것입니다.

그렇다면 박윤웅은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 볼까요.

송수환 교수(울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박윤웅에 대해서는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기 이전에는 기록이 없어 활동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경상도지리지에서 그를 신학성장군이라 칭하고 변통하는 재주를 깨우쳐 토벌하는 권력을 잡았다. 한 것으로 보아 신라말기 울산일대를 지배하는 호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극기의 대화루시서에는 박윤웅을 계변천신이라 하고 이 천신이 사람들의 수명과 복을 관장했다고 신격화 해서 이를 확인 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박윤웅은 신라말기에 행정조직과 군사조직을 갖춘 호족으로써 울산일때를 지배 하다가 망해가는 신라를 지탱하기보다는 신흥하는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이 울산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준다고 생각하여 고려에 귀부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조귀감(掾曹龜鑑)”울산박씨족보에는 태조는 박윤웅을 삼한공신에 봉하고 채지(采地)와 더불어 유포의 곽암(藿巖)12구를 하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채지(采地)란 이런바 녹읍이란 것으로 녹봉으로 내려준 고을이란 뜻을 갖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왕의 토지와 백성에 대한 지배권을 이 지역에 한해 이양 받았다는 뜻입니다. 왕건은 박윤웅을 이렇게 예우함으로써 울산 전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곽암(藿巖)이라는 것은 미역이 자생하는 바위라 뜻하는데 이 바위는 바다위의 채지(采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어민들이 대대로 이 비역바위에서 미역을 채취하여 박윤웅에게 수확물의 일부를 세액으로 바치게 된것입니다.

곽암을 하사한 것은 다른 연해지역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울산광역시 북구 구유동 판지마을에 유포면 해안 바다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 곽암은 양반돌, 박윤웅돌이라 불리고 있으며 200111월에 울산광역시 지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경상도지리지에서 울산군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한번 살펴볼까요.

 

울산군은 본래 계변성(戒邊城)인데 신라때

신학성(神鶴城)으로 고쳤다.

신학성이라 한 것은,

당나라 천복원년(신라 효공왕 5, 서기 901)

학 두 마리가 금으로 된 신상(神像)을 물고

계변성 신두산에서 우는 것을 군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겨 학성(鶴城)이라 이름하였다.

고려때 신학성장군(神鶴城將軍) 박윤웅은

변통하는 재주를 자세하게 깨우쳤다.

토벌하는 권력을 잡고 태조를 보좌하여

능히 왕업(王業)을 일으켰다

 

이 기록의 내용을 토대로 박윤웅은 본래 신학성장군이라 불리는 울산의 호족이었으며 왕건에게 귀부하여 고려를 일으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오늘날 울산의 별칭 학성이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울산에서 고려의 창립은 신라의 오랜 그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윤웅은 고려개국의 공신이자 당시 주변 호족들을 통합해 울산의 틀을 만들었든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울산박씨 후손들은 지난 1986년 중구 태화동 산36-6에 학산서원을 세워 장무공 박윤웅을 비롯하여 그의 후손인 고려말 충신인 사은공 박추, 유은공 박유, 임진왜란때 혁혁한 공을세운 학수당 박홍춘 4분을 모시며 향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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