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경북

경북 유적지

도화골 2015. 5. 1. 08:00

 

2014. 제2 석굴암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

 경상북도 부계면 남산리, 팔공산 연봉 북쪽 기슭에 있는 석굴이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만국 국보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1962년 9월 22일에 발견되었다. 지상으로부터 약 6미터 높이의 천연적인 암벽을 뚫어 만든 석굴에 안치된 이 석불은 중앙에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높이 2.88미터,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1.8미터, 왼쪽에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높이 1.8미터이며 모두 무거운 양감과 함께 침울한 위엄을 보이려는 느낌이 든다. 본존불은 긴장된 엄숙한 얼굴이며 납작한

코와 짧은 목이 더욱 친밀감 없는 우상(偶像)으로 만든다. 보살들의 안면 역시 코 밑을 처리 못하는 고졸한 생경감이 엿보이며

몸은 삼곡(三曲, Tribhanga : 인도의 불상에서 시작하여 당나라의 천룡산 석굴에서 많이 나타나는 불상형식으로 허리를 비튼 모양이 보이지만 부드럽지 못하고 남자가 여장(女裝)한 듯 딱딱한 인상이다. 이 석굴은 경상북도 경주 석굴암 석굴보다 100년 전에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무거운 장엄함과 기념비적인 성격은 타산석굴(駝山石窟) 같은 수나라 시대의 조각에서 출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본존불의 대좌 앞에 늘어진 천의(天衣)의 주름은 북위(北魏)의 룽먼 석굴(龍門石窟) 같은 데서 흔히 보는 특색있는 수법에서

발전해 온 형식이며 보살들의 목에도 당의 성기(盛期) 불상에서 보는 따위의 두터운 삼도(三道:세줄기 주름)와 기다랗게 늘어지는

경식(頸飾)이 감겨 있다.

 

 

 

2014. 안동 문화공원

 

문화공원(文化公園)

 

[소재지]

경산북도 안동시 동부동 447-8

 

경상북도 안동시 동부동에 있는 공원.

 

문화공원은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천이 낙동강 남쪽 안동시 정하동으로 이전하자 이 터를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고자 2005년 법원과 검찰청을 허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여 2007년 6월 준공하였다.

2008년에 전통 삼문과 육각정 및 연못을 조성하였다.

 

5,957㎡의 대지에 조성되어 있다. 문화공원 안에는 안동문화원과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전통 삼문, 육각정, 연못, 등이 있다.

 

문화공원은 주로 지역 문화예술 단체와 청소년들의 각종 공연 행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있어 접근이 쉬울 뿐

아니라 각종 행사에 필요한 시설물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는 장소로도 많이 찾고 있다.

 

 

2014. 도산서원 시사단

 

시사단(試士壇)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556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지방 과거 시험장.

 

시사단은 본래 1792년(정조 16) 3월에 정조가 이조판서 이만수(李晩秀)에게 명하여 퇴계 이황(李滉)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는

뜻에서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신설하여 안동 지역의 인재를 선발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도산별과는 문과 2인, 진사 2인,

초시 7인, 상격(賞格) 14인을 선발하는 별시(別試)로서 그 과시(科試)가 시사단(試士壇)에서 거행되었다.

 

시사단은 나직하고 널찍한 2단의 자연석 돌림상단 위에 세워져 있다. 원래 설단(設壇)만 있었으며 석비는 후에 세운 것이다.

석비는 1796년(정조 20)에 세워졌으나, 지금의 비는 1824년(순조 24)에 비각(碑閣)의 개축과 더불어 고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이 지었다.

비각은 화반(花盤)과 초공(草工)의 새김이 매우 화려한 4면 단칸 팔작집이며, 중방(中枋) 아래는 모두 판벽(板璧)으로 돌려

막아 비바람의 침해를 예방하였다. 겹처마의 사면 추녀 아래에는 팔각 활주(滑柱)를 세워 구성이 견실하다. 내부는 도리 위에

아치 모양으로 장식된 보를 걸었고 그 사이 천장은 장방구(長方區) 소란반자로 치장되었다.

 

시사단은 강변에 세워져 있었으며, 주변에는 송백림(松栢林)이 무성하였으나, 안동땜 건설로 분천강이 침수되어 수위가 상승하자

원래 위치에서 10m 높이의 석축을 쌓아올려 원형대로 개건하였다. 이 때문에 주위의 송백림은 유지될 수 없었다.

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시사단은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별과 시험을 치른 곳이라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서, 정조 때에도 이황의 학문적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말해 준다.

 

 

2014. 도산서원

 

도산서원(陶山書院)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도산면)


문화재 지정
[도산서원] 사적 제170호(1969.05.28 지정),[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삼문]

보물제211호(1963.01.21 지정),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보물 제210호(1963.01.21 지정)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

(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

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 ·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했다.

1792년(정조 16)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리고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시행하였다. 1796년(정조 20) 시사단 (試士壇)을 세우고,

1819년(순조 19) 장서고(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 건립하였다. 1870년(고종 7)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 제외되었으며,

1930년(경오년) 서광명실(西光明室) 증건(增建)하였고 1932년(임신년) 하고직사(下庫直舍) 이건하였다.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 324.945㎡이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 · 증축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 되었다.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4. 도산서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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