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의 변화과정 |
|||||||||
고 대 |
|||||||||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터전이 되어 우리의 선인들이 아득한 |
|||||||||
석기시대부터 육로 또는 해로로 이곳에 들어와 정착사회를 이루어 살았던 곳이다. |
|||||||||
서생면 신암리, 병영동 병영성지, 장현동 황방산의 신석기 유적이 있고 석검이 출토된 화봉동과 |
|||||||||
지석묘가 있는 언양면 서부리의 청동기 유적이 있다. 이 밖에 북구 중산동, 온산면 산암리, 언양읍 |
|||||||||
동부리, 삼동면 둔기리, 온양면 삼광리, 상북면 덕현리, 동구 일산동, 중구 다운동, 삼남면 방기리 등지 |
|||||||||
에서 각종 유적과 유물이 관계 연구기관과 대학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
|||||||||
또한 사연댐 상류에 위치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암각화에는 고래·거북·사슴·멧돼지 등의 각종 동물 |
|||||||||
그림이 있고, 두동면 천전리의 각석에는 원·삼각형·마름모 등의 각종 기하학적 무늬들이 있어 울산지방 |
|||||||||
이 고대 인간사회의 유력한 생활터전이었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당시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보여 준다. |
|||||||||
울산은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소속으로 중구 다운동을 중심으로 굴아벌촌이라는 읍락을 형성했는데, |
|||||||||
신라가 파사왕 때 이곳을 취해 굴아화현을 두고, 남쪽에는 생서랑군, 동쪽에는 동진현, 언양지방에는 |
|||||||||
거지화현을 두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하곡현(일명 하서현)으로 이름을 고치고 월성군 외동읍 |
|||||||||
모화 지방에 있던 임관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
|||||||||
언양지방은 본래 거지화현인데, 경덕왕 때 헌양현으로 개칭해 양주의 영현으로 하였다. 신라시대에 |
|||||||||
울산지방은 일찍부터 불교문화가 파급되어 태화사 등의 불사가 성행하였다. ≪삼국사기≫ 열전에 |
|||||||||
나오는 우시산국도 울산지방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의 울주군 웅촌면이 그 위치일 것으로 |
|||||||||
추정된다. |
|||||||||
신라시대를 통해 울산지방에는 하곡현과 동진현이 임관군의 영현이란 격을 띠고 있었고 남쪽에는 |
|||||||||
동안군이, 서남쪽에는 우풍현이 자리잡고 있었다. |
|||||||||
고려시대
|
|||||||||
그러나 고려 태조 때 개지변을 지배하고 있던 호족장 박윤웅(현재 울산박씨 시조)이 930년(태조 13)에 최환을 보내 항복을
|
|||||||||
청해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의 공이 컸으므로 하곡 · 동진 · 우풍의 3현을 합해 흥례부(또는 흥려부)로 |
|||||||||
승격함(10월 1일 : 현재 울산시민의 날)에 따라 임관군의 영현에서 벗어나 비로소 한 고을로서 발전해 오늘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
|||||||||
983년(성종 2)에는 고려왕조가 지방제도를 강화해 중앙집권화를 추구하면서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
|||||||||
995년(성종 14) 다시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해 전국을 449현으로 분할, 흥례부를 공화현으로 낮추고 |
|||||||||
별호를 ‘학성’이라 했다가, 1018년(현종 9)에 이르러 공화현·헌양현·기장현·동래현를 합해 울주로 개편 |
|||||||||
하고 방어사 · 지울주사를 두었다. |
|||||||||
1143년(인종 21)에 헌양현을 분립시켜 감무를 두었고, 동래도 현령을 두어 분립시켰다. 울산은 바다와 |
|||||||||
접해 있고,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고려 후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가 막심하였다. |
|||||||||
조선시대 |
|||||||||
1397년(태조 6) 울주에 진을 두어 병마사가 지주사를 겸하게 하다가, 1413년(태종 13) 지방행정 개편에 |
|||||||||
따라 진을 폐지하고 울산군으로 개칭해 비로소 울산이라는 칭호가 등장하게 되었다. |
|||||||||
1417년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을 경주에서 울산 병영동으로 옮기고, 1418년 염포를 개항해 왜관을 |
|||||||||
설치했으며, 1426년(세종 8)에는 병마절도사영을 폐지하고 다시 진을 두어 병마첨절제사가 지군사를 |
|||||||||
겸하다가 1437년 병영을 다시 설치하였다. |
|||||||||
같은 해 1월에 울산도호부로 승격시키고, 판관을 더 두었다가 8월에 다시 군으로 강등하였다. |
|||||||||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세종 때 울산군의 호구는 1,058호에 4,161명이었다. |
|||||||||
1459년(세조 5)에는 동래에 있던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을 개운포로 옮겼으며, 1510(중종 5)에 삼포 |
|||||||||
왜란으로 염포가 폐쇄되고, 1592년(선조 25)에 개운포에 있던 경상좌수영이 다시 동래군으로 옮겨갔다. |
|||||||||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울산 의병이 경주·울산을 수복하고 멀리 대구·창녕·동래까지 나아가 적을 무찌 |
|||||||||
르는 등 큰 전공을 올렸다. 그 공훈으로 당시 좌의정 이덕형의 건의로 1598년 울산도호부로 승격하고 |
|||||||||
병마절도사 겸 부사를 두었으며, 이듬해인 1599년에 임진왜란의 피해로 자립할 수 없는 언양현을 울산 |
|||||||||
도호부에 합쳤다가 1612년(광해군 4)에 다시 현으로 복구시켰다. |
|||||||||
1616년에는 병마절도가 겸직하던 도호부사직을 전임의 도호부사를 두어 맡도록 하였다. 1681년 |
|||||||||
(숙종 7)에는 하미면(下未面)을 기장현에 이관하고 받기를 되풀이하다가 1861년(철종 12)에 거의 다 |
|||||||||
되돌려주었다. 1771년(영조 47) 울산의 호구는 8,670호에 3만2,973명이었다. |
|||||||||
근 대 |
|||||||||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를 개정해, 도제도를 폐지하고 23개의 부를 새로이 두었는데, 이 때 울산은 |
|||||||||
도호부를 군으로 개칭하고 언양·양산·동래·기장·거제·경주·영일·홍해군 등과 함께 동래부의 관할 하에 |
|||||||||
들어가게 되었다. |
|||||||||
1906년에는 칙령 제49호의 시행으로 지방행정을 정리해 온남면의 일부와 외남·웅상면을 양산군으로 |
|||||||||
이속하였다. 1914년 부·군을 정리·폐합하는 지방제도 개편시 언양군을 울산군에 병합했는데, 이 때 |
|||||||||
태화강 이남의 삼산·달동·신정·옥동지방을 합해 울산면, 하부면과 내상면을 하상면으로 하고 현남면과 |
|||||||||
현북면을 합해 대현면이라 개칭하였다. |
|||||||||
1931년 11월 1일 울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34년 동면을 읍으로 승격시켜 방어진읍으로 하고, |
|||||||||
1944년 대현면을 울산읍에 편입해 출장소를 두었다가 1946년 다시 대현면으로 하였다. |
|||||||||
1919년 3·1운동 때는 병영의 비밀청년회조직이 주도해 일본경찰과 충돌하는 격렬한 시위로 많은 |
|||||||||
사상자를 냈으며, 언양· 남창· 웅촌· 온산까지 만세운동이 파급되어 4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
|||||||||
냈다. |
|||||||||
현 대 |
|||||||||
해방 이후 울산은 경제개발정책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1962년 2월 1일 울산읍, 방어진읍, |
|||||||||
대현면, 하상면 전 지역과 청량면 두왕리, 범서면 무거·다운리, 농소면 송정·화봉리를 합해 울산특정 |
|||||||||
공업지구로 지정, 공포하고 같은 해 6월 1일 울산시로 승격시키는 한편, 울산군을 울주군으로 개편 |
|||||||||
하였다. |
|||||||||
1963년 3월 12일 울주군 서생면이 동래군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양산군의 관할이 되었으나 1983년 |
|||||||||
2월 15일 다시 울주군으로 복귀하였다. 또 1973년 3월 12일 삼남면의 구수리를 언양면으로 편입시키 |
|||||||||
고, 1973년 7월 1일 두서면에 속했던 소호리를 상북면으로 이속시켰으며, 1975년 10월 1일 온양면의 |
|||||||||
덕신리와 청량면의 용암·학남리가 온산면으로 편입되었다. |
|||||||||
1985년 7월 15일 구제가 실시됨에 따라 중· 남구가 설치되었고, 1988년 1월 1일 방어진출장소가 |
|||||||||
동구청으로 승격되어 3구 40개 동이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
|||||||||
1995년 1월 1일 울산시와 울산군이 통합되고, 1996년 12월 31일 〈울산광역시설치에 관한 법률〉이 |
|||||||||
공포되어 1997년 7월 15일 울산광역시로 출범하였다. 이에 따라 북구가 신설되고 울주군이 울주군 |
|||||||||
으로 복군되어 4구 1군 체제가 되었다. |
|||||||||
이후 1998년 3월 1일 동구 염포동 일부가 북구로 편입되었고, 2002년 남구 무거동 일부를 울주군 |
|||||||||
범서읍으로, 울주군 범서읍 일부를 남구 무거동으로 각각 편입하였다. |
'역사 >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대 대통령 (0) | 2017.01.31 |
---|---|
대마도- 한국영토 거론이 두려운 일본 (0) | 2017.01.31 |
울산대교의 3가지 비밀 (0) | 2017.01.31 |
울산 중구 태화루 중창 (0) | 2017.01.31 |
울산 중구 태화루 (0) | 2017.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