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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한국영토 거론이 두려운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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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또 다시 독도 시비를 걸고 있다. 일본도 독도는 역사적으로 신라때 이사부 장군이 점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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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했고, 일본 메이지(明治)때 태정관지령(太政官指令)에서도 일본영토가 아님을 인정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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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그런데 저들이 왜 이렇듯 시비를 멈추지 않을까! 이유가 있다. 대마도(對馬島)-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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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거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작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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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馬島本是我國之地'(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 이는 세종대왕이 선언한 것을 실록이 기록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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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글귀다. 대마도(對馬島)는 명백히 우리영토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50km,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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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에서는 138km이다. 이 대마도에 고대부터 한국인이 건너가 살았다(魏志) 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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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韓(마한)과 마주보는 땅이라 하여 우리 선조는 「對馬島」로 명명하였다. 세종대왕은 이종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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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금 대마도(對馬島)의 왜구를 토벌하고 확실하게 한국령(경상도)에 예속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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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 (백두산은 머리고, 대관령은 척추며, 영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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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대마도)와 호남의 탐라(제주도)를 양발로 삼는다). 이 글귀는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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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글귀다.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고 우리 민족의 한쪽다리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그 對馬島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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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 멋대로 자기영토로 편입 시켜버렸다. 우리는 일본이 잘라간 그 한쪽발(嶺南之趾)를 되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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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한다. 일본은 임진왜란→스페인, 영국 등 서구근대와 세력의 해양영토 약탈시기→식민지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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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연이은 불행한 소용돌이를 이용해 대마도를 슬그머니 도둑질 한 후 (1871년에 일방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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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하라 현으로 그 후 1876년에는 나가시키현에 편입)아예 자기들 영토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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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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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조선조정(한국)은 어떤 형태가 되었던 일본에 대마도를 넘겨준 일이 없다. 도둑질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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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를 두고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한국인뿐 아니라 그들(후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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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세뇌했다. 우리는 그 쇠뇌작전과 특히 조작된 일제 식민사관에 젖어 지금까지 대마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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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땅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건국)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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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수립을 선포하고, 불과 사흘 후(8월 18일) 「역사의 진실은 어쩔 수 없다, 대마도는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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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므로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천명했다. 6.25직전(3년 동안)까지 60여차례나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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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역사학회·고고학회 등으로 하여금 대마도에 관하여 왜곡-논문을 발표케 하면서 변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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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의 역사적 위치(1949)」, 「대마 문제(1951)」논문 등이 그 예다. 1950년 6·25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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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발하고 미·소가 대립하자 일본은 「이때다」하고 미국에 읍소로비를 했고 미국은 마침내 한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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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한채 일본과 다음과 같이 전후(戰後)처리(샌프란시스코협정)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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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도서는 한국에 모든 권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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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이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에서 미국은 독도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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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 대해서는 영토속국을 명백히 하지 않은 것이다. 아! 6.25가 대마도 반환 걸림돌이 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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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이승만은 이에 불복하고 우선 평화선 선포를 통해 우선 독도만은 어족(魚族)보호 명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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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독도만은 실효지배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지난 2005년에 확인된 미국 국무부 외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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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27일 한국 이승만은 대마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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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치, 청구를 분명히 포기하고 그것을 한국에 돌려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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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요청한다. (In view of this fact the Republic of Korea request that Ja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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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fically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the Island of Tsushima and retur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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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to the Republic of Korea) 여기에서 「specifically renounce」귀절에 주시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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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외교문서로서는 최고로 강력한 의사표시다. 대마도 회복(반환) 문제는 우리 7,000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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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숙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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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회복하는 문제에 있어 국제관례의 관점에서 아무런 제약이 없다. 왜냐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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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에 미국의 영토가 된 일본 남부 오가사와라(小笠原) 군도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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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로서 인정받고 반환 받았던 국제적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내놓은 지도 ‘삼국접양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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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시헤이(林子平) 제작, 프랑스어판)가 그 근거이다. 미국이 오가사와라 군도가 일본 영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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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 옳다고 판단하게 한 그 지도에 오가사와라가 일본 영토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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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독도와 대마도가 엄연히 한국 영토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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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에 준하는 증거가 또 발굴되었다. 지리학자로 영국에서 활동하였던 이태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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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Kernot씨가 1790년에 작성한 「일본과 한국」이라는 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뿐만 아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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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도 한국 영토로 그려져 있는 사실이 발굴(견)된 것이다. 이 지도에는 대마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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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IT OF COREA'로 표시되어 있고 특히 독도와 울릉도, 대마도의 관할 국가를 표시하는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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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 색깔을 한국 본토와 같은 황색으로 나타내 이들 섬이 한국령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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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있다. 일본은 이러한 일련의 사실이 부각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독도 시비를 계속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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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칠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속셈이 가증스럽다. 독도시비에 말려들고 「對馬島本是我國之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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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선언한 이 확실한 증거를 두고도 우리는 대마도는 일본 땅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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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우리는 이제 약소국이 아니다. 적어도 자기것은 자기것이라고 당당하게 임해야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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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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