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경주

경주 장항리 사지

도화골 2020. 2. 17. 22:20


경주장항리사지 (慶州獐項里寺址)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1

건립시기 : 통일신라시대

문화재 지정 : 사적 제45호

성격 : 사찰터

유형 : 유적

면적 : 3,580㎡



절터는 토함산(吐含山) 석굴암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좌우에 계곡을 끼고 있는 낮은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계곡은 감은사(感恩寺) 앞을 지나 동해로 흐르는 대종천(大鐘川)의 상류이다. 절터에 있었던 절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지명인 장항리를 따서 장항리사지라고 불린다. 다만 장항사(獐項寺)라고 불린 절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이름을 장항리라고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가파른 계곡 위쪽에 위치한 절터에는 5층석탑인 서탑과 파괴된 동탑, 석조 불대좌(佛臺座) 등이 남아 있다.

현재 땅 위에 드러나 있는 건물터는 불상을 모셨던 금당(金堂) 자리로 보이며, 불대좌는 이 건물터의 중앙에 마련되어 있다. 건물의 받침 규모는 동서 15.8m, 남북 12.7m로, 남아 있는 주춧돌을 볼 때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인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의 금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석조 불대좌는 위아래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졌는데, 아래 부분은 측면의 안상(眼象) 속에 신장(神將)과 신수(神獸)를 조각한 팔각형으로 되어 있고, 윗 부분은 연꽃을 조각한 원형 연화대좌(蓮花臺座)이다. 크기는 아래 부분이 높이 0.6m, 최대 지름 2.4m이며, 윗 부분은 높이 0.53m, 지름 1.84m이다. 대좌 위에 놓여 있던 석조 불상은 1932년에 서탑을 복원할 때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 북쪽 뜰에 전시되어 있다.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었던 것을 복원하였지만 뒷부분의 광배(光背) 일부와 무릎 아래는 없어진 상태이다. 머리와 얼굴의 모습, 광배의 화불(化佛) 등을 새긴 수법을 볼 때, 8세기 경에 만들어진 여래입상(如來立像)으로 판단되며, 현재의 높이는 3m이지만 실제로는 4m 이상인 큰 불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약 10m의 5층석탑은 금당터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약 15m 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1925년에 도굴범이 탑 속에 있는 사리(舍利) 장치를 탈취하기 위하여 폭파한 것을 1932년에 복원하고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위아래 2중 기단 위에 몸돌을 올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동탑은 부재가 붕괴된 상태로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금당터와 서탑 사이에 모아두었다. 이 탑도 남아 있는 부재로 미루어 보아 서탑과 규모가 같은 5층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항리사지는 계곡 사이의 좁은 대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쌍탑(雙塔)을 배치한 통일신라시대의 가람 양식을 보여주나 강당(講堂)이나 회랑(廻廊)의 존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주 장항리 오층석탑 (慶州獐項里西五層石塔)

문화재 지정 : 국보 제236호

건립시기 : 8세기

성격 : 불탑, 석탑

유형 : 유적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3

내용

석탑은 주변에서 산출되는 밝은 계통의 담백색 화강암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층수에 있어 오층을 유지한 점이 특이하다. 기단부는 이중기단으로 상하층 모두 몇 개의 판석으로 면석이 구성되었다. 하층기단 상부에 호각형 2단 받침을 두고 상층기단 갑석 상면에 2단의 탑신받침과 하단의 부연 등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 기단의 구성방식과 동일하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각 1매로 되어 있다. 초층탑신 네 면 모두 중앙에 직사각형의 문비를 새기고 중앙에는 괴수형 문고리를 조각하여 장식성을 높였으나 중앙에 문짝 분할선은 생략하였다. 문비 양쪽에는 우주와 맞물려 조각된 금강역사가 있는데, 연꽃을 밟고 서 있는 입상으로 각각 손에 무구(武具)를 쥐고 권법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크기는 작지만 매우 정교하면서도 위엄 있는 자세로 뛰어난 조각수법을 보여준다. 1929년 조사 당시 이곳 초층탑신 상면에서 사리를 봉안했던 사리공이 확인되었다. 2층부터 탑신의 높이는 현저히 낮아졌으며 급격한 체감을 나타내며, 모두 모서리에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모두 하단에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고 상단에는 2단의 받침을 두어 위층의 탑신을 받치고 있다.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모서리에서 반전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 처마 하단에 물끊기 홈은 생략되었으며 합각선 모서리에 1개, 전각부 양쪽에 각각 2개씩, 총 5개씩의 풍경공이 뚫려 있다.

상륜부는 노반을 제외하고 모두 결실된 상태이다. 노반은 방형의 육면체로 상단에는 원형의 찰주공이 있으며 2단의 돌출대를 두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특징            

이 석탑을 구성하는 부재는 기단부가 23매, 탑신부가 10매, 상륜부가 1매, 총 34매이다. 석재의 숫자만을 놓고 본다면 감은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에 비해 엄청나게 줄어든 숫자이다. 특히 같은 오층탑인 나원리사지 오층석탑과 비교했을 때 석재의 숫자가 거의 흡사한 점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각 부재를 여러 개의 판석으로 조립하여 결구한 탑에서 벗어나 완성된 부재를 쌓아 올리는 누적식탑으로의 이행을 이 탑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오층의 탑신을 유지한 유일의 쌍탑이라는 점과 초층탑신에 금강역사를 새긴 점은 이 탑만의 특징이다. 한편 서탑 옆에 초층탑신과 옥개석만을 포개놓은 동탑에 나타나는 금강역사상은 서탑에 비하여 매우 느슨한 느낌을 주고 있어 조각적으로 매우 다른 양식으로 보인다. 따라서 동시대의 탑이 아닐 것이라는 가능성과 같은 시대의 것이라면 직능을 달리하는 장인이 동시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유일의 오층쌍탑 가람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탑의 위치를 볼 때 금당 앞에 탑이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금당의 좌우측에 위치한다. 또한 좁은 가람 터를 감안한다면 금당에서 약 15m 떨어져 동시대 쌍탑 가람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토함산 동쪽은 대종천을 따라 신라의 동해구로 나가는 지역으로 일찍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호국사찰들이 창건된 곳이기도 하다.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에 새겨진 팔금강은 사천왕과 함께 불법과 국가를 수호하는 신장으로 유행되었다는 점에서 호국적 성격의 사찰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초층탑신에 새겨진 금강역사상은 불교조각사 및 도상해석학 연구에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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