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와 멀어진 결혼식 | ||||||||
인생에는 중요한 단계가 몇 있는데,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의례가 있다. 결혼식이 그것이고 | ||||||||
장례식이 그것이다. 이 두 의례가 중요하다 보니 많은 돈을 들여 거창하게 하는 게 일반적이다. | ||||||||
그런데 돈을 그렇게 많이 들였다면 식이 식다워야 할 텐데 한국인들이 하는 의례의 내막은 영 | ||||||||
그렇지 못하다. 겉만 화려할 뿐 내실이 영 없다. 혼(魂) 빠진 예식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우선 | ||||||||
결혼에 대해서 알아보자. | ||||||||
결혼식은 한 마디로 축전(祝典)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결혼식은 잔치와는 거리가 멀다. | ||||||||
이전에 마을에 살 때에는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온 동네가 잔치를 벌이면서 즐거워했건만 지금은 | ||||||||
혼 빠진 의식만 하고 밥 후딱 먹고 내빼는 것으로 끝난다. 한국인들이 요즘 하는 결혼식은 기괴해서 | ||||||||
거의 인류학자의 연구거리가 될 정도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 ||||||||
이 사정을 아주 간단하게만 보자. 이런 결혼식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 ||||||||
아마도 서양의 기독교식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한국인 가운데 이런 결혼식을 제일 처음 한 사람은 | ||||||||
고종의 아들 중 누구라는데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 식이 기독교식이라는 것은 주례에게 | ||||||||
서약하는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 결혼식에서 이 순서는 원래 목사(신부)를 통해 신께 서약을 | ||||||||
하는 것이다. | ||||||||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서약을 성직자에게 하는 게 아니라 신께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 ||||||||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 결혼식이 성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서약을 우리는 세속인인 | ||||||||
주례에 대고 한다. 그래서는 아무런 성스러움이 없다. 이처럼 우리 결혼식은 서양 결혼식의 겉만 | ||||||||
빼오고 혼은 버렸다. 그래서 기괴하다는 것이다. | ||||||||
나도 어쩔 수 없이 주례를 10여 차례 서 봤다. 처음에는 대단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곧 주례는 | ||||||||
액세서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회용 소모품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랑 안면으로 가면 신부 | ||||||||
측 부모는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다. 주례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 ||||||||
성직자라면 내게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주례사는 누가 듣는다고 뻔질나게 하는지 | ||||||||
모르겠다. 기독교식에서는 목사가 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니 들어야 하겠지만 한낱 속인(俗人)인 | ||||||||
주례가 하는 말을 누가 듣겠는가? | ||||||||
그런데 한국 결혼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대부분 신랑 신부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 ||||||||
그들 신랑 신부는 그저 출연 배우일 뿐이다. | ||||||||
진짜 주인 공은 엄마들이다. 이들이 결혼의 전 과정을 감독하기 때문이다. 혼수니, 사주단자 | ||||||||
(四柱單子) 보내기니 하는 과정을 총 감독하는 이가 엄마다. 그래서 결혼식 할 때 그들에게는 가장 | ||||||||
중요한 순서가 할당돼 있다. 한국인들은 이 순서가 얼마나 재밌는 순서인지 모른다. 신랑이 입장 | ||||||||
하기도 전에 양가의 엄마 둘이 나와 초에 불붙이는 순서가 그것이다. 세상에 이런 순서가 있는 | ||||||||
결혼식은 전 세계에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식의 맨 앞에 이들이 나오는 순서가 있다는 것은 | ||||||||
이들이 이 식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뜻한다. | ||||||||
이에 비해 가장 힘이 없는 사람은 신랑의 아버지다. 신부의 아버지는 그나마 딸의 손을 붙잡고 | ||||||||
나오는 순서라도 있지만 신랑 아버지는 아무런 순서도 없다. 이는 실추된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 ||||||||
그 다음 순서는 신부가 아버지에게 ‘이끌려’ 나오는 것인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이 순서에서는 | ||||||||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처럼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이념이 물씬 묻어난다. 쉽게 말해 자기 딸을 | ||||||||
다른 남자에게 인도하는 것이 이 순서다. 만일 내가 여자라면 결혼할 때 저런 순서는 안 할 게다. | ||||||||
이런 것에 부조리함을 느낀 요즘의 서양 젊은이들은 신랑 신부가 같이 식장에 들어온다. 그런데 | ||||||||
서양 따라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이런 건 왜 따라 안 하는지 모르겠다. | ||||||||
그 다음인 서약하는 순서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앞에서 이미 밝혔다. 나는 주례를 설 때 내가 이 신랑 | ||||||||
신부들의 서약을 받아 어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아무런 성스러운 권한이 없는 내게 | ||||||||
서약을 뭣하러 하느냐는 것이다. 굳이 서약하는 순서를 넣고 싶으면 서로에게, 혹은 부모에게 | ||||||||
서약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 ||||||||
그 다음으로는 양가 부모에게 절하는 순서가 있다. 여기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인사하는 | ||||||||
우리처럼 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조부모가 살아 계신데도 앞좌석으로 안 모시고 일반석에 앉게 | ||||||||
하는 것은 정말 모를 일이다. 우리 부모를 있게 한 분들이 그들인데 조부모께 예우를 이렇게 하는 | ||||||||
것은 예의가 아니다. | ||||||||
이렇게 보면 우리 결혼식은 서양식도 아니고 우리식도 아니고 도대체 계통이 없는 식이다. 그렇게 | ||||||||
되니까 외양만 화려하게 만들려고 돈만 ‘처’바르는 것 아닐까? 이런 것 외에도 쓸데없이 하객을 | ||||||||
많이 초청하는 등 폐단이 너무 많다. | ||||||||
마지막으로 폐백(幣帛) 순서가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들은 이 순서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 ||||||||
잘 모른다. 이것은 중요한 점이니 다음 번에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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