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한국문화

잔치와 멀어진 결혼식

도화골 2017. 1. 27. 23:02
잔치와 멀어진 결혼식
인생에는 중요한 단계가 몇 있는데,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의례가 있다. 결혼식이 그것이고
장례식이 그것이다.      의례가  중요하다  보니  많은 돈을 들여 거창하게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돈을  그렇게  많이  들였다면  식이  식다워야  할 텐데 한국인들이 하는 의례의 내막은 영
그렇지  못하다.  겉만  화려할    내실이    없다.  혼(魂) 빠진 예식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우선
결혼에 대해서 알아보자.
결혼식은 한 마디로 축전(祝典)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결혼식은 잔치와는 거리가 멀다.
이전에  마을에    때에는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온 동네가 잔치를 벌이면서 즐거워했건만 지금은
혼 빠진 의식만 하고 밥 후딱 먹고 내빼는 것으로 끝난다. 한국인들이 요즘 하는 결혼식은 기괴해서
거의 인류학자의 연구거리가 될 정도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이 사정을 아주 간단하게만 보자. 이런 결혼식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아마  서양의  기독교식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한국인 가운데 이런 결혼식을 제일 처음 한 사람은
고종의  아들    누구라는데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 식이 기독교식이라는 것은 주례에게
서약하는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 결혼식에서 이 순서는 원래 목사(신부)를 통해 신께 서약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서약을  성직자에게  하는    아니라  신께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 결혼식이 성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서약을 우리는 세속인인
주례에  대고  한다.  그래서는 아무런 성스러움이 없다.  이처럼 우리 결혼식은 서양 결혼식의 겉만
빼오고 혼은 버렸다. 그래서 기괴하다는 것이다.
나도  어쩔    없이 주례를 10여 차례 서 봤다. 처음에는 대단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곧 주례는
액세서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회용 소모품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랑 안면으로 가면 신부
  부모는  나에게  인사  하지 않는다.  주례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성직자라면  내게  그렇게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주례사는 누가 듣는다고 뻔질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기독교식에서는 목사가 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니 들어야 하겠지만 한낱 속인(俗人)인
주례가 하는 말을 누가 듣겠는가?
그런데 한국 결혼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대부분 신랑 신부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 신랑 신부는 그저 출연 배우일 뿐이다.
진짜  주인 공은  엄마들이다.  이들이  결혼의    과정을  감독하기  때문이다.  혼수니, 사주단자
(四柱單子) 보내기니 하는 과정을 총 감독하는 이가 엄마다.  그래서 결혼식 할 때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순서가  할당돼  있다.  한국인들은 이 순서가 얼마나 재밌는 순서인지 모른다. 신랑이 입장
하기도  전에  양가의  엄마  둘이  나와  초에 불붙이는 순서가 그것이다.  세상에 이런 순서가 있는
결혼식은  전 세계에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식의 맨 앞에 이들이 나오는 순서가 있다는 것은
이들이 이 식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에  비해  가장  힘이  없는  사람은  신랑의 아버지다. 신부의 아버지는 그나마 딸의 손을 붙잡고
나오는 순서라도 있지만 신랑 아버지는 아무런 순서도 없다. 이는 실추된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순서는  신부가 아버지에게 ‘이끌려’ 나오는 것인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이 순서에서는
여성을  남성  부속물처럼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이념이  물씬 묻어난다.    쉽게 말해 자기 딸을
다른  남자에게  인도하는  것이 이 순서다.  만일 내가 여자라면 결혼할 때 저런 순서는 안 할 게다.
이런  것에  부조리함을  느낀 요즘의 서양 젊은이들은 신랑 신부가 같이 식장에 들어온다.  그런데
서양 따라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이런 건 왜 따라 안 하는지 모르겠다.
그 다음인 서약하는 순서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앞에서 이미 밝혔다. 나는 주례를 설 때 내가 이 신랑
신부들의  서약을  받아 어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아무런 성스러운 권한이 없는 내게
서약을  뭣하러  하느냐는  것이다.  굳이  서약하는  순서를 넣고 싶으면 서로에게,  혹은 부모에게
서약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양가 부모에게 절하는 순서가 있다.  여기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인사하는
우리처럼  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조부모가 살아 계신데도 앞좌석으로 안 모시고 일반석에 앉게
하는 것은 정말 모를 일이다.  우리 부모를 있게 한 분들이 그들인데 조부모께 예우를 이렇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결혼식은 서양식도 아니고 우리식도 아니고 도대체 계통이 없는 식이다. 그렇게
되니까  외양만  화려하게  만들려고 돈만 ‘처’바르는 것 아닐까?  이런 것 외에도 쓸데없이 하객을
많이 초청하는 등 폐단이 너무 많다.
마지막으로 폐백(幣帛) 순서가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들은 이 순서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잘 모른다. 이것은 중요한 점이니 다음 번에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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