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경남

표충사

도화골 2017. 3. 20. 21:06

 

밀양 표충사(表忠寺)

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표충사(表忠寺)는 밀양읍에서 동쪽 방향으로 28km 떨어진 재약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이며, 사명대사의 호국성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표충사는 654년에 원효대사가 나라의 번영과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명산을 찾아다니던 중,

천황산 산정에 올라 남쪽계곡 대나무 숲에서 오색구름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아 절을 세우고 사찰의 이름을 죽림사(竹林寺)라고 했다.

829년(신라 흥덕왕 4) 인도의 고승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이곳에 머물 때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악성 피부병에 걸려 전국에서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이에 흥덕왕이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크게 부흥시켰으며,

왕자가 마셨던 약수를 영험한 우물 약수라는 뜻의 ‘영정약수’라 했고,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 영정사(靈井寺)’라 고쳐 부르고 크게 부흥시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찰이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600년에 혜징화상이 중건했다.

1679년에 실화로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소실되자 1680년에 대규모로 가람을 중건했다.

1839년(헌종 5)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앞장선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지금의 대법사 자리인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절의 이름을

 ‘표충사’로 개명했다. 표충사는 1983년 사명대사 호국 성지로 성역화되었다.

표충사의 건물 배치는 대광전과 표충서원을 중심으로 두 개의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대광전은 불교, 표충서원은 유교 영역이다.

유교 공간이 불교 사찰 경내에 공존하는 특이한 가람 구조이다.

 

왼쪽부터 표충서원, 사당 표충사, 유물관

 

 

사당 표충사

 

 

표충사

사당 표충사 중앙에 사명대사의 영정이 있고 동쪽에는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

서쪽에는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기허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1744년 영조 임금의 어명으로 제향행사가 시작된 이래 밀양시청이 주최하고

종교계(불교 · 유교)가 주관하는 민관합동 제향으로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초정일(初丁日)

즉 첫 정(丁)자가 들어 있는 날에 불교와 유교 의식이 함께하는 호국선현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사찰 표충사 대광전

 

 

 

삼층석탑

 

 

표충서원  

표충사(表忠寺)’ 현판이 붙은 문루를 지나면 왼쪽에 유물관, 표충사(表忠祠),

표충서원 등 건물 3동이 보인다.

표충서원은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서 나라를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 사명대사 · 기허대사 3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선조 임금이 ‘표충서원’이라고 사액했다.

원래는 사당이었던 것을 1839년 현재의 위치에 있던 영정사 안으로 옮겨

‘표충서원’이라 이름 지었으며, 사찰의 이름 또한 ‘표충사’로 고쳤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883년 지역 유림의 요청으로 복원되었으며 근년에 현재의 위치인

단장면 구천리 영정사 자리로 옮겨지었다.

1927년 절을 다시 지을 때 표충서원 건물도 함께 복원했다.

그러나 일부 승려들이 절 안에는 서원이 있을 수 없으며 부처님과

3대사의 영정이 함께 있는 것은 더욱 안 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1971년에 표충서원을 절의 서쪽에 위치한 팔상전으로 옮겼다.

서원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목조와가이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에 행하는 제사도 승려가 아닌

관리가 주재하여 올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표충서원은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표충사 호국박물관  
‘유물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호국박물관에는 국보 제75호로 지정된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埦)을 비롯하여 200여 점의 사명대사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유물관에는 1604년(선조 38) 사명대사가 일본에 다녀오면서 선물로 받은 대형 목탁과
북을 포함하여 200여 점의 전시물이 있는데, 대부분 사명대사가 사용하던 유품들이다.

 

 

유물관

 

 

 

 

사명대사 금란가사와 장삼 

사명대사 임유정(任惟政, 1544~1610)이 입던 금란가사와 장삼이 각각 1착씩 이곳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금란가사’는 스님들이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옷이다.

사명대사의 금란가사는 황금색의 중국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가로 270cm, 세로 80cm이다.

‘장삼’은 스님들이 평상시에 입는 길이가 길고 소매를 넓게 만든 웃옷이다.

흰색의 무명으로 만든 장삼은 상의와 하의가 연결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훼손은 되었으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금란가사와 장삼은 1973년 7월 16일 중요민속자료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양국 대장 사령깃발 

양국 대장 사령(兩國大將司令) 깃발은 1604년 사명대사가 강화사로 일본에 갈 때

선조 임금이 하사한 길이 210cm의 깃발이다.

깃발에는 ‘사대선교행 이조판서 대광보국숭록대부(賜大禪敎行吏曺判書大匡輔國崇錄大夫)’,

‘영의정 양국대장 사명당 현제군 사령(領議政兩國大將四溟堂絃諸軍司令)’이라고

적혀 있어 어느 사령기보다도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매년 3월과 9월의 정일(丁日)을 기하여 거행되고 있는 사명대사 향사 시에는

이 사령깃발을 반드시 게양한다.

사령깃발은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되었다.

 

사명대사 일본 상륙 행렬도 팔곡병 

1604년 사명대사가 강화사로 일본에 갈 때 사명대사 일행의 행렬을 그림으로

그린 8폭의 병풍이다.병풍에 등장하는 인원은 1,020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 20명은 사명대사를 포함한 조선 측 수행원이다.

당시 일본의 관행은 일반 사신을 영접할 때 보통 300명을 보내는데,

사명대사에게는 1,000명을 보내어 수행토록 했다.

수행원의 수가 많은 것은 사명대사의 위상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객의 습격 등 예상치 못한 불상사로부터 대사 일행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명대사 일본 상륙 행렬도 팔곡병은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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