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국사

신라태조 성한왕

도화골 2017. 1. 27. 22:12
신라태조 성한왕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추사 김정희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금석학의 대가 추사는 문무왕 비문을 살펴보고 있었다
비문에는 '투후 김일제'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었다
신라의 '태조는 성한왕' 이라는 기록이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등 우리 역사서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문무왕 비는 현재 경주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중국인 유희해가 편찬한 [해동금석원]에는 다양한 비문의 탁본들이 실려있다
문부왕 비문의 앞 뒤면에  복원된 글자는 모두 2600여자, 
높이 1m60cm의 문무왕 비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문의 첫 행에는 국학소경이라는 관직을 가진 이가 이 비문을 지었다고 돼 있다
중하단부에는 문무왕의 즉위와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다
흉노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약 400여 년간 몽골고원과 만리장성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쳤던 북방 유목민족이다
[한서]에는 김일제의 자는 옹숙이고 본래 흉노 우지의 휴도왕의 태자였다
휴도왕은 감숙성 무위 서북지역을 다스리던 왕이였다.
김일제는 한과 흉노의 전투에서 한무제의 포로가 되어 한나라의 마부로 전락했다
한무제를 암살하려던 반란 세력을 진압하는 데 김일제가 큰 공을 세운 것이다
한무제는 김일제를 제후국 왕으로 임명했는데,
이때 김일제에게 주어진 직책이 바로 '투후'였다
흉노족의 태자로, 한나라의 노예로, 다시 한나라에서 황제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파란만장했던 인물이 김일제였다
그가 바로 신라의 문무왕 비문에 등장하고 있다
문무왕의 비문에는 문무왕 15대 선조가 성한왕이라는 것이다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의 묘비에도 태조 한왕이라는 기록이 있다 
묘비는 간략하게 '성한왕'을 '한왕이라고 축소해서 쓴것이다
신라 42대 흥덕왕의 비석에도 '태조 성한왕'이 등장하고
성한왕은 흥덕왕의 24대조라는 것이다
문무왕은 흥덕왕의 9대조라 기록돼 있다
신라 김씨의 시조가 성한왕이라 기록돼있다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7대째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이어져 왔는데
그 7대 후손이 성한왕이라는 것이다
김알지와 동일 인물로 확인되는 신라태조 성한왕 
그의 7대조 조상은 흉노족 김일제였다
쿠테타의 주역 왕망과 김일제의 증손자인 김당은 이종사촌 간이었다
이종사촌이 일으킨 반란에 연루 혹은 가담했던 김일제의 증손자 김당은
피의 보복을 피해 투국을 떠나 성까지 바꾸며 중국을 탈출하여  
김일제의 후손들이 한반도로 이동해 뿌리를 내린 것이다
문무왕의 비는 경주 낭산 사천왕사에 있었는데
어느 왕릉 아래서 밭갈이 하던 농부의 괭이 끝에 걸려 세상에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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