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국사

울산 중구 함월루

도화골 2017. 1. 31. 14:03





소재지 : 울산광역시 중구 성안동 산 152-11

함월루(含月樓)에 올라보세요

무수한  설(設)과  카더라  방송으로  한동안  시중에  뜨겁도록  떠돌던  루머로  인하여  고향을  위해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도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한  정치인을  제 명(命)에  가지  못하게  했던  함월산,   소나무가  잘려나가  솔  숲의 우수(憂愁)가

서려 있는 울산의 주산 함월산에 새로운 루(樓)가 생겼다.

태화루를  복원한  이후  이만한  루를  세우기는  처음인  듯  한데  대개의 경우 물가에 짓는 루의 위치 선정을 떠나서도 이렇듯

루를  세운  울산의  종갓집  관서인  중구청이  파천황(破天荒)을  이룬 것  같아서  중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다.   풍수지리에  전혀  아는  바  없는  필자가  보아도  함월루(含月樓)에서  내려다  보는 울산의 풍광은 과연 절경

그대로이고 절경 가운데에도 진수를 보는 느낌이다.   일찍이  동국여지승람에  올라있듯  국토  동남단에서 제일이란 말이 결코

과방된 것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함월루에  오르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인물이 울산이란 고을을 처음 여는데  개시조가 된  박윤웅(朴允雄)이다 역사에  최초의  울산 지배자로 등장하는 그의 치소(治所)가 있던 계변성이 지척의 눈 아래에서 선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중구 반구동에서 태어나 계변성 성주(城主)가 됐고 신학성 장군이 된  다음  고려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울산  고을에다 경주에 속했던 모화 입실지역을 포함한 웅촌, 서창지역의 광할한 땅을 흡수한 흥려부(興麗府)를  세웠다. 지금으로 말하면 소도시를 광역시로 만든 셈이다. 흥려부의 흥려백이 된 그는 울산의 호족으로

울산 박씨의 시조가 되는 나말여초 시대의 큰 인물이었다.

울산의 지명을 흥려부라 한 것은 나라를 흥하게 하는 고을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듯 1,0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늘 나라살림을 도우는 고을의 전통을 이어왔다. 또 박윤웅이 서라벌(徐羅伐) 도성(都城)의 턱 아래에 있는

방어진, 강동 바다를 지키면서 무역항을 열고 교역을 넗히며 달천광산을 수호한 호국정신이  오늘날  SK의 프레어스텍에

24시간을 쉬지않고 활활 타고 있는 불꽃과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의 위용을 번영의 상징으로 또 나라의 살림을 크게 돕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뜻 깊고 좋은 전망을 이루는 함월루이다.

자녀들에게  조상의  음덕을  기리게  하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이 되었지만 울산에 살면서 울산을 잘 알리는 일도 애향심

을 키우는 일이다.   애향심은 곧 애국심으로 이어진다. 중구청이 함월루와 태화루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함월루에서는 향토사를 익히는 문화공간이면 어떨까 한다.    실상  차분히  들여다 보면 함월루에서의 향토사 교육은 그 실체가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다.

함월산부터가 그렇다.    함월산을  울산의  주산(主山)으로  부르는  것은  그  고을을 관장하는 관서의 뒤편에 있는 산을 이르는

데서 비롯된다.    실제로  눈  아래의  북정동에는  동헌을  비롯해  관아등  울산의  관서가  고스란히 들어서 있던 곳이다. 또한

경주의  기림사가  있는  산을  신라의  남악(南岳)이라고  한 함월산인데 불가(佛家)에서 이 산이 뻗어 내린 지맥이 이어져 있어

함월산으로 부르게 됐다.   이  산의  백양사는  신라가  기울고 있을 무렵 천년사직을 이으려고 무진 애를 쓰던 경순왕이 당시의

고승(高僧)인 백양선사를 개산조로 삼아 지은 절로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통도사,    태화사와 함께 호국불교의 전통을 이어온

천년고찰이다. 함월루에 오르거나 오르고 나서는 성안동의 달빛 누리길을 한 번 돌아볼 일이다.    먹거리도 갖출 때로 갖추어진

곳이거니와  인접  마을이나  바위 등이 옛 전설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특히  장수(長壽)의  상징  인물인  동방삭

(東方朔)의  전설을  간직한  숯못을  보고  가야할  곳이다.    한(韓)나라   무제(武帝)때  사람으로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먹어  죽지  않고  오래  살면서  피해  다닌  전설적인  그가  어째서  성안동에  나타났을까?  그것이 나를 퍽이나 궁금하게

하면서  그에 대한 연구에 조바심을 갖게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울산의 유수한 사람들이 성안동 때문에 오래 살다

갔었다. 새벽에 산책길을 겸해서 운동삼아 빠지지 않고 걸어서 새일내(성안동)에 다녀간 사람들이다.

글을 쓰다 보니 온통 성안동 자랑이 되어서 좀 멋쩍긴 하지만 나의 주거지(住居地)이니까 혜량있기를.........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모텔 같은 건물은 하나도 없는 청정 마을, 포도청인 경찰청이 있어 치안도 안심되는 마을,

예부터 상리(上里)라 해 으뜸이 됐던 마을, 그 마을 함월산의 "함월루에 올라보세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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